SPECIAL REPORT |
극과 극은 통한다, 온앤오프 커머스
XITY No.0 예비창간호
2023.04.24
융합의 시대다. 가수가 연기를 하고, 자동차 기업이 로봇을 만든다. 커머스 판도 다르지 않다. 전통적인 오프라인 강자로만 머물 줄 알았던 기업들은 온라인 서비스를 개시하거나, 더 나아가 메타버스로 확장 중이다. 반대로 온라인에서 시작한 기업들은 어느새 오프라인으로 진출하고 있다. 서로의 영역으로 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는 온·오프라인 커머스 서비스들을 체험해보았다.
소비자에게 가치 이상의 신선함을 전달하다
전통의 오프라인 강자, 대형 유통기업들이 기존 채널을 넘어 온라인, 메타버스로 사업 영역을 확장 중이다. 반대로 효율적인 온라인 세계에만 머물 줄 알았던 이커머스 기업들은 속속 오프라인 공간을 만들고 있다. 이들은 왜 서로의 영역으로 진출하는 것일까.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영역에서 어떻게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있을까. 백문이 불여일견. 오프라인 업체의 온라인 서비스와 온라인 업체의 오프라인 진출을 각자의 관점에서 체험해보기로 했다. 양쪽의 변화를 조금 더 재미있게 풀어내보고자 각기 다른 여건에 놓인 에디터가 한쪽씩 전담 취재했다.
이마트에 직접 방문해 대규모로 장을 봐 오는 문화에 익숙한 독자도 있을 것이고, 1인 가구라는 점에서 마트보다는 배달의민족에 의존하는 독자도 있다. 하지만 이마트와 배달의민족은 소비자들의 서비스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각각 체제 변환을 꾀하고 있다. 이마트는 점포와 전용 물류센터를 거점으로 온라인 새벽배송 서비스를 확장 중이며, 배달의민족은 오프라인 거점을 구축해 소량 구매도 가능한 장보기 서비스를 음식 배달 시간과 유사한 1시간 내 배송을 무기로 전개하고 있다.
나이키는 네이버 제페토에서 운동화를 신어볼 수 있는 가상 점포를 오픈했고, 국내 1위 온라인 패션 커뮤니티 무신사는 난데없이 무신사 테라스라는 오프라인 공간을 홍대 한복판에 마련했다. 나이키는 제페토에서 운동화를 판매하지 않고, 무신사 테라스는 옷을 판매하기 위한 공간 조성이 아니었다. 무엇인가 소비자들에게 기존에 제공하던 가치 이상의 것을 전달하고 있었다. 노량진의 대장 횟집으로 꼽히는 형제상회는 거대 온라인 음식 배달 플랫폼이 난립하는 와중에 자체 브랜드 파워를 활용, 독립적인 온라인 회 판매 플랫폼으로 거듭나고 있다.
3대 명품 온라인 쇼핑 플랫폼 중 하나인 발란은 여의도 IFC몰에 오프라인 점포를 열어 백화점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양쪽이 추구하는 방향성은 유사했다는 결론이다. 혁신적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우던 온라인 기업 비즈니스 모델의 불안함과 전통 채널의 위기의식이 만나 신선한 커머스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각자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다면 성장이 멈출지도 모르지만, 각자의 강점을 살려 고객 저변을 확대하고, 기존 고객들의 충성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물론 누군가는 변화에 보수적이기에 커머스 기업들의 행보가 불편하고 이질적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업들은 생각이 다르다. 백년 기업이 드물듯 파괴적 혁신을 수반하지 않으면 초단위로 변화하는 시류에서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커머스 기업들의 치열함이 느껴진다.
#AZshopper_Is_Back
이마트가 익숙한 아저씨의 SSG닷컴 도전기
결혼 8년 차 유부남. MZ세대에 편승해보려고 하지만, 행동을 돌아보면 Z세대 후배들보다는 X세대 선배들에 가깝고 편안할 때가 많다. 가사일도 마찬가지. 맞벌이 부부의 기본은 정확한 가사 분담이라지만, 쇼핑에 있어서는 예외다. 온라인 쇼핑의 기본은 꼼꼼한 할인혜택이며, 모바일 생활용품 쇼핑은 일종의 미션이었다. 최저가 혜택을 충분히 누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먼저 집 안의 식료품 등 생활용품 재고가 머릿속에 있어야 한다.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는 상태에서, 모바일 페이지 속 ‘특별할인’에 혹해 상품을 구입했다간 얼마 지나지 않아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경우가 흔했기에. 이미 집에 소진하지 못한 동일 품목이 존재하거나, 유통기한이 짧아 얼마 지나지 않아 폐기해야 하는 물건들도 특별할인의 덫이다. 두 번째로 각종 카드 등을 활용한 할인 신공에 능통해야 한다. 여러 할인과 포인트 혜택을 생각하기엔 내공이 부족하다.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SSG닷컴’을 열었다. 훈제오리를 고른 다음 장바구니에 조심스레 담았다. 그리고 손쉽게 결제를 누르려던 찰나! 배송비가 붙는 것이 보인다. 3,000원! 배송비가 붙는다면 온라인 주문을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 ‘무엇을 더한다…’. 마침 얼마 전 소진한 단백질 보충제가 생각났다. 최근 평이 좋은 모 유업의 셀렉스 제품을 검색하기 시작. 쿠폰을 더하니 편의점에 비하면 꽤나 만족할 만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 그런데 웬걸, 구매버튼을 누르려고 하니 배송비가 사라지지 않았다. 가격은 무료배송 기준을 충족했는데, 문제는 픽한 셀렉스 보충제는 SSG 배송 항목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훈제오리는 SSG 배송상품이지만, 셀렉스 보충제는 택배배송 상품이었던 연유로 무료배송 항목에 포함되지 않은 것. SSG 배송으로 범위를 축소한 뒤 셀렉스 보충제를 검색했으나 원하던 상품은 보이지 않았다. 담대하게, 셀렉스 보충제는 취소버튼을 눌러야 했다. 그러곤 밑반찬으로 즐겨 먹는 오징어진미채를 쇼핑 목록에 담았다. 그런데 애매하게 모자란 3,000원. 노브랜드 생수가 떠올랐다. 식구가 많지 않아 집에 정수기를 들여놓지 않은지라 생수는 필수 품목이다. 그간 SSG 장바구니 옆에 놓여 있던 1.5리터 6개들이 생수박스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무료배송을 위한 아내의 고민을 답습한 것을 확인한 기분. 꽉꽉 눌러 모바일 장바구니를 채운 결과는 4만 1,150원. 간신히 무료배송 기준을 충족할 수 있었다.
사실, SSG닷컴의 역사는 짧지 않다. SSG닷컴은 2014년 이마트몰과 신세계몰의 온라인 부문 합병 후 별도법인 설립으로 시작되었으니, 어언 10여 년이 되어간다. 여기에 마켓컬리의 새벽배송 등 다양한 도전에 맞선 아이템들이 합쳐진 결과가 지금의 SSG닷컴이다.
새벽배송의 신선함과 편리성보다는 이커머스를 통한 저가 전자제품과 신발 득템에 환호했던 입장에서 SSG닷컴은 몇 가지 생각할 거리가 있다. 먼저 소비자 관점에서 SSG닷컴 배송 서비스는 신선식품 배달에 강점이 있다. 과자, 단백질 보충제 등 유통기한이 긴 제품은 할인율이 크지 않았지만 고기나 생선과 같이 유통기한이 상대적으로 짧은 제품은 가격 할인폭이 컸다. 기업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유통기한이 짧아 빠른 시간 내에 처리한다는 이점도 보였다.
두 번째로 모바일 상점에서 이것저것 사다 보면 무료배송 금액에 맞추기 위해 불가항력 같은 기분으로 유통기한이 긴 제품들을 마지막에 추가로 구매한다는 점. 생수가 좋은 예다. 오프라인에서 알뜰하게 장을 본다면 3만 7,000원에 그칠 쇼핑이 온라인 무료배송 금액을 맞추기 위해서 4만 원을 넘겨야 한다. SSG닷컴 입장에서 배송비 등을 감안한 실리를 따져봐야겠으나, 전체 매출 규모로는 대략 8%의 증대 효과가 있다. ‘배송 가격 허들 설정과 배송비 간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기억을 되돌아보면 이마트와 같은 할인형 대형마트가 처음 등장한 약 20여 년 전, 매주 부모님과 함께 장을 보러 다녔다. 일주일 치 장을 보면 차 트렁크뿐만 아니라 뒷자리도 미어지기 마련이었지만 싼 가격에 좋은 물건을 살 수 있다는 점은 매우 혁신적이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당시 부모님의 나이가 되었다. 아이를 키우며 가정을 꾸려가야 하는 무게는 비슷한 것 같지만 차 트렁크는 한결 가볍고 마트를 가는 횟수도 그때보다 많지 않다. 온라인 쇼핑몰 덕분이다. 기술이 삶의 본질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조금 더 수월하게 만들어주는 것 아닐까.
#SuperChiler
Z세대의 혼란스러웠던 오프라인 무신사 테라스
국내 최대 온라인 편집숍이자 패션 커뮤니티인 무신사는 홍대입구역 AK몰 17층에 무신사 테라스를 운영하고 있다. 언뜻 생각하면 무신사에서 판매하는 상품을 오프라인에서도 구매할 수 있는 공간일 것 같다. 예상처럼 일부 상품을 판매하고 있기도 했지만, 무신사 테라스의 목적은 옷 판매에 있지 않았다.
이미 온라인으로 옷을 구매하는 데 익숙해진 요즘 소비자들에게 굳이 오프라인 점포를 오픈한 이유가 뭘까. 과거에는 온라인에서 옷을 구매하는 것이 색상이나 사이즈 문제로 교환, 반품 시 과정도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려 불편했다. 하지만 온라인 쇼핑몰이 흔해진 요즘, 무료 반품 및 교환 서비스 과정도 간소화되었고, ‘옷은 매장 가서 입어봐야 한다’는 인식도 낮아졌다. 무엇보다 매장 방문 시 심리적으로 부담이 되는 것은 점원들의 과잉(?) 응대일 것이다. 일부러 ‘말씀 걸지 말아주십사’ 이어폰을 귀에 꽂고 매장을 둘러봐도 응대해주는 점원들이 있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쇼핑하기가 쉽지 않다. 반면, 온라인 쇼핑은 그런 면에서 편하다. 무엇보다 매장으로 직접 발걸음을 옮기는 것 자체가 번거롭다. 폭염이나 혹한일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이미 온라인 편집숍으로 높은 기업 가치를 인정받은 무신사가, 무신사 테라스를 오픈한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물음표가 머릿속을 맴도는 채 AK몰 1층에 도착했을 때 처음 받은 인상은 왠지 모를 프라이빗함이 선사하는 고품격 서비스였다. 17층 무신사 테라스로 직행할 수 있는 별도의 엘리베이터를 운영하고 있었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무신사 회원가입을 해야만 입장할 수 있다는 점원의 안내가 이어진다. 뭔가 무신사 커뮤니티의 일원으로서 특별 혜택을 받는 듯한 착각. 회원가입 후 쏟아지는 각종 쿠폰들을 훑어보며 몇 걸음 옮기니 상당한 공간감이 느껴지는 널찍한 빈백 존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람들이 빈백에 기대어 음료수를 마시며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유튜브를 보며 미소 짓고 있는 사람도 있고, 음료수를 마시며 책을 읽는 사람도 있었다. 옷가게인 줄 알고 방문했다가 별안간 칠링(Chilling)하기 딱 좋은 장소가 자리하고 있어 또 다른 의미로 혼란스러움이 가중되었다.
빈백 존을 지나니 바깥으로 향하는 문이 나왔다. 문을 열자 해질녘 홍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탁 트인 경관이 펼쳐졌다. 휴대폰 카메라로 연신 셔터를 눌러댔는데 유리 난간에는 무신사 테라스 로고가 디스플레이 화면으로 송출되고 있었다. 그 순간 무신사 테라스 존재의 이유를 직감했다. 무신사 테라스는 회원들만을 위한 프라이빗 인스타 감성 공간이었다. 예쁜 옷을 파는 옷가게라기보다 뷰 맛집으로 불리는 게 더 적절한 공간이었다. 홍대 일대와 여의도, 한강까지 조망할 수 있도록 조성된 테라스, 음료수 한 잔 들고 주변을 감상하다 보니 해가 졌고, 곧바로 야경이 펼쳐졌다. 테라스를 둘러싼 유리 난간 곳곳은 밤이 되자 또 다른 인테리어로 다가왔는데, 마치 무신사 테라스 로고가 하늘을 수놓은 듯한 인상이었다. 일대에 이곳과 비슷한 수준의 시각적 아름다움을 제공하는 공간이 없기 때문에 여느 카페를 방문하는 것보다 곱절은 값어치 있다는 느낌이었다. 테라스 구경을 마치고 실내로 들어오자 그제야 옷을 판매하는 공간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면적이 크지 않았다. 몇몇 브랜드의 옷이나 패션잡화가 매대에 걸려 있었고, 종류도 다양하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무신사 테라스가 옷 판매보다는 무신사 회원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보이는 대목이었다.
무신사 테라스는 Z세대에게 ‘어떻게 고객 경험을 강화할 수 있는지’ 정확하게 제시한 결과물이다. 어릴 때부터 경험한 경쟁적 교육, 취업 환경에 지친 세대가 추구하는 여유 있고 안락한 문화. 해외에서는 욜로(YOLO)로 대변되기도 하는 문화의 한 부분을 공간적으로 잘 조성해두고 있었다. 무신사 회원이라면 빈백에 누워 아무렇게나 있어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고, 찌뿌둥하면 테라스에 나가 홍대 일대와 한강까지 내다보며 차 한잔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도 된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할 때 ‘거기가 어디냐’는 지인들의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분위기와 전망이 한몫 단단히 거든다. 무신사가 기존 형태인 온라인만 고수했다면 제공할 수 없었을 가치를 무신사 회원들에게 독특한 방법으로 전달하는 감성 마케팅. 그 덕에 회원들은 무신사에 더욱 애착을 갖게 된다. 애초 패션 전문 커뮤니티로 시작한 무신사가 유저들이 더욱 결집할 수 있는 요소를 대세에 맞게 오프라인 공간에 풀어낸 사례다.
기사 전문은 <XITY> 매거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ditor KIM DONGWON, RYU SEUNGW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