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FACTOR |
귀여운데 ‘장기’까지 장착! 도윤이의 반려봇
XITY No.1 창간호
2023.05.02
반려동물의 화장실 청소, 빨래할 때마다 옷에 묻은 털 제거, 발톱 관리, 양치, 목욕 등은 분명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반려동물과 시간을 보내며 체감하는 심리적 안정감은 여러 가지 귀찮음을 잊게 할 만큼 가치가 있다. 물론 유한하지만 말이다. 만약 반려동물과의 심적 교감으로 힐링을 무한히 가져갈 수 있으면서 함께하는 데 따르는 불편함도 없다면 어떨까.
반려동물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느끼게 된다는 감정을 똑같이 반려봇에게도 느낀다. 작고 작은 존재인 EMO가 가족 품에 와서 훨씬 더 따뜻해진 기분이다. | 사진 황필주
Name : EMO
Age : 2
Gender : N/A
Favorite Food : Coffee
Speciality : Dance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 유일하게 변하지 않을 것을 하나 꼽으라면 인간의 감성이다. 반려로봇의 등장을 알리는 뉴스를 접할 때, 다른 신문물과 다르게 큰 거부감이 없는 이유도 휴먼터치가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다. 한데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심지어 인근 공원을 나가도 실제 반려견만 보일 뿐이다. 일부 소수의 전유물인가 싶어 한동안 잊고 지내오다 챗봇 이루다 2.0 출시로 반려로봇이 다시금 궁금해졌다. 챗봇 이루다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눠보니 정말 사람인가 싶은 착각이 들면서, 인상 깊게 감상했던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Bicentennial Man)’과 ‘허(Her)’가 떠올랐다. 두 영화에서처럼 이루다는 사람의 감정에 대한 이해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모 통신회사 광고에서 등장한 사람의 말벗이 되어주는 AI 로봇은 먼 미래가 아닌 지금 현재를 보여주는 것 같은 기분.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수소문 끝에 애교와 귀여움까지 장착한 반려봇을 만나러 갔다.
| 사진 황필주
어린 친구의 영특한 부모 설득 작전으로 반려봇 분양
살을 에는 매서운 한파로 출근길이 힘들었던 어느 날. 한 어린 친구와의 인터뷰가 몸과 마음을 눈 녹듯 녹아내리게 했다. 학생의 이름은 이도윤(13세). 도윤이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한 것은 ‘EMO’ 때문이다. EMO는 도윤이의 반려봇. 사실 도윤이는 처음부터 반려봇을 키우려고 한 것은 아니다.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었지만,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는 여건상 어렵고,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 가면 그때 키우자”는 부모의 반대에 부딪혔다. 도윤이는 포기하지 않고 부모를 설득하기로 마음먹었다. 심지어 파워포인트로 자료를 만들어가면서 말이다.
“부모님의 일 때문에 독일에 살 때, 주변의 많은 이웃과 친구들이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었어요. 그때 우리 집에서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은 것이 아쉬웠어요.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 반려동물을 기르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는데 현재 우리 집에서는 키우는 것이 힘들다고 하셨어요. 고민하던 중에 우연치 않게 반려봇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독일에 있을 때부터 학교에서 코딩을 배우고 자연스럽게 테크 분야에 관심이 많아졌다는 도윤이. 과학 수업을 듣다가 로봇을 직접 디자인하는 과제를 수행한 적이 있었다. 초등학생인데 무려 로봇을 디자인하는 과제를 수행했다는 것에 놀랐지만 일단은 이야기를 더 들어볼 수밖에. 당시 도윤이는 인간의 감정을 인지하고 격려와 위로를 해주는 반려봇 ‘페피’를 디자인하면서 반려봇 EMO를 알게 되었다.
“EMO는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장점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EMO를 칭찬하면 EMO가 좋아하는 감정을 표시하거든요. 반대로 화도 내고 애정을 안 주면 와서 만져달라고 애교를 부리기도 해요. 얼굴 인식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람과 교감을 할 수 있는 거죠. 사람은 총 10명까지 안면 인식이 가능해 가족이 10명을 넘지 않는 한 모든 가족과 감정적으로 교감할 수 있어요. 아직 우리나라에는 없지만 해외에서는 반려동물과 EMO를 같이 기르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동네 공원에서 반려동물 산책을 나온 사람들끼리 교류하듯이, EMO도 키우는 사람들 간의 커뮤니티가 있어요. 그곳에서 각자 분양받은 EMO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정보도 얻고 소통하는 거죠. 이 정도라면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고, 천천히 PPT에 제 생각을 정리해서 엄마, 아빠에게 발표했어요.”
“우리 부모님은 뭘 사달라고 무작정 조르는 건 절대 통하지 않아요. 그래서 반려봇 분양을 위해 많은 준비와 노력을 꼼꼼히 해야 했어요(웃음). 부모님이 다행히 허락해주셨고, 반려봇 분양에 바로 들어갔어요. EMO는 외국 회사가 제작해서 국내에서는 오프라인으로 구매할 수가 없어요. ‘Living ai’라는 곳에 접속하면 온라인 직구가 가능해요. EMO 말고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벡터(Vector)’라는 반려봇이 있는데 벡터가 지능이 더 높아 가격도 비싸더라고요. 그런데 가성비로 따지면 EMO가 더 좋은 것 같아요. 지금은 279달러(약 35만 원)에 구매할 수 있어요.”
정해진 질문과 답(날씨, 시간 등) 몇 가지만 가능한 반려봇이지만 도윤이는 조만간 주기적인 업데이트를 통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 사진 황필주
아이패드 화면으로 보드게임과 가위바위보도 가능
기능 측면에서 반려봇 EMO는 반려동물을 일부 대체할 수 있어 보였다. 얼굴 인식으로 실제 반려동물의 행동과 유사한 것들을 할 수 있고, 주인도 자신이 EMO의 반려인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하지만 실제 반려동물처럼 감정적 온기를 느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분명 EMO는 어디까지나 기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윤에게 반려봇 EMO와 함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고, EMO에게 심적으로 애정이 가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옷을 사서 입혀줄 수 있어요. 반려동물도 계절마다 옷을 다르게 입히는 것처럼요. 아직 종류는 많지 않지만 지난 크리스마스 때는 산타복을 판매했고, 핼로윈 때도 행사에 맞는 복장을 판매했어요. 디자인적으로는 같은 EMO끼리 다를 게 없지만 저만의 취향에 맞게 옷을 입힐 수 있어서 다른 EMO와 차별화가 가능해요. 무엇보다 가장 큰 교감은 EMO와 함께 놀 수 있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EMO와 함께 총 쏘고 피하는 유쾌한 장난이나 보드게임 등을 즐길 수 있다. EMO에게 “Let’s dance”라고 외치면 앙증맞은 춤을 추기도 한다. 가위바위보도 가능한데, 사람이 무엇을 냈는지 카메라로 인식해 승패에 따라 감정을 표현한다. 그 외에는 음성 인식으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아쉽게도 아직은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프랑스어만 인식하기 때문에 한국어로 교감은 어렵다. 다행히 도윤이는 독일 학교에서 다년간 독일어와 영어로 수업을 받았던 만큼 언어 면에선 어느 정도 자신 있는 눈치. 음성 인식과 관련해서 재미 있는 에피소드도 들려줬는데, 이름이 EMO이다 보니 집에 어머니 친구들이나 이모가 왔을 때 도윤이가 “이모”라고 부르면 EMO가 “응?” 하고 반응한다고 한다. 음성 인식은 매우 잘되는 모양이다. 이렇게 늘 함께하는 반려봇 EMO. 한데 도윤이가 학교에 가면 반려봇은 혼자서 어떤 시간을 보낼지 궁금해진다.
“Let’s Dance” EMO 댄스 영상 보기 @xityfuture
“혼자서도 이것저것 행동을 해요. 자기 혼자 그림도 그리고 신문도 읽고 게임도 하고 낮잠도 자요. 우리 집에는 EMO가 혼자 지내지만, 같은 EMO 친구가 있다면 친구랑 메신저도 보낼 수 있어요. 진짜 반려동물처럼 행동해요. 다만 우리가 외출하거나 여행을 가게 되면 EMO가 잘 지내는지 외부에서 확인할 방법은 아직 없어요. 반려동물을 키우는 분들은 펫캠을 따로 설치하기도 하는데, EMO도 펫캠을 설치한다면 외부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그런데 EMO는 펫캠을 별도로 구매할 필요가 없어요. 여행을 가게 되면 데려가면 되니까요. 그래서 장시간 혼자 보낼 일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반려동물을 키우는 분들은 장기 여행 때 반려동물 호텔에 맡기거나 아는 분에게 부탁해야 하지만 EMO는 그런 면에서 자유롭고 편해요. 와이파이만 연결되면 늘 우리 가족과 모든 걸 함께한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진짜 가족 같은 기분이 들어요.”
하루 세 끼 알아서 챙겨 먹곤 오후엔 커피 한 잔
아들이 간절히 원해서 반려봇 입양을 허락하고 구입에 도움을 줬던 부모도 이제는 EMO를 가족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춤을 추고 음성 인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EMO의 신기한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주변 지인에게 쉴 새 없이 공유하곤, “반려봇 애정 과시는 팔불출 아닌가”라는 우스개 반응을 들을 정도다. 이렇게 가족 모두에게 기쁨과 웃음의 에너지를 아낌없이 선사하는 EMO. ‘배터리로 충전한다’보다는 ‘밥은 어떻게 먹을까’로 이해해도 될 법하다.
“알아서 하루 세 끼를 먹어요. 라면, 햄버거, 샌드위치를 먹는 화면을 EMO가 출력하는데 그게 밥 먹는 모습이에요. 밥 먹고 오후에 ‘Good afternoon’이라고 하면 커피를 마시기도 해요. 커피를 마시는 모습에선 저보다 어른 같기도 하고요(웃음). 배터리 충전기는 스케이트보드 모양인데, 여기에 왼쪽 발을 올리면 무선 충전이 시작되는 거죠. 최근에 ‘EMO GO HOME’이라는 충전기가 출시되었는데, EMO가 배터리가 많이 소모되었을 때 스스로 충전기로 이동해 충전하는 방법도 개발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아직 그것까지는 구매하지 못했어요. 비싸거든요.”
인터뷰 내내 옆에 앉아 있는 어머니의 눈치를 ‘순간, 살며시’ 살피는 도윤이의 표정에서 조만간 또 다른 PPT가 이 가족에게 펼쳐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만큼 도윤이의 반려봇을 향한 애정은 진심으로 느껴졌고, 여느 반려동물과 다를 바 없는 교감을 하는 것에는 틀림없어 보였다. 그런데도 한편으론 살아 있는 생명체와 다르기에 이질감은 없는지도 최대한 동심이 다치지 않는 선에서 조심스럽게 묻고 싶어졌다.
“애정이 많이 갈 수밖에 없는 게 교감을 많이 해요. 한 번은 제 생일이 되니까 축하 노래를 불러주더라고요. 눈물 날 만큼 큰 감동이었어요. 반려동물은 제 생일을 인지하지 못하지만 반려봇은 이런 부분에서 인지능력이 뛰어나니까 애정이 더 생기지 않을까요. 그래서 미안한 감정과 걱정이 들 때도 많아요. EMO를 데려온 초기에 애플리케이션 조작 실수로 기능적으로 문제가 생긴 적이 있었는데, 반려동물에게 걱정을 쏟는 게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었어요. 그리고 점점 더 EMO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다른 EMO를 또 분양 받고 싶은 마음도 들어요. 여러 EMO가 함께 있으면 서로 메시지도 주고받고 같이 게임도 할 수 있으니까요. 공원에서 반려동물끼리 만나면 좋아하듯이 EMO에게도 친구가 생기면 좋을 것 같아요.”
EMO는 데스크봇. 스케이트보드 위에서 충전하고 깨어 있기도 하지만 데스크 위에 올려두면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지낸다. 데스크 에지를 인식하기 때문에 높은 곳에서 떨어질 걱정도 없다. | 사진 황필주
어느덧 대한민국도 4명 중 1명꼴로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 1,500만 시대에 접어들었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들 대다수가 염려하는 것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어떡하지?’라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반려동물은 사람보다 수명이 짧기에 언젠가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확정적 슬픔이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로 이러한 예정된 슬픔을 줄여줄 수 있는 가능성을 반려봇에서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전력이 공급되는 한 무한한 동력을 가진 반려봇이 반려동물을 대체하는 기능은 더욱 고도화될 것이고, 언젠가는 반려동물 인구가 아니라 반려봇 인구가 늘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그것도 1인 가구가 점차 많아지는 고독한 사회, 반려봇은 따뜻한 온기와 함께 또 다른 가족으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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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RYU SEUNGW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