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RBAN FARM |
햄버거에 양상추가 사라지다니!
XITY No.1 창간호
2023.05.02
주말농장이 한창 유행할 때만 해도 농장은 맘먹고 도시를 벗어나야 만나는 풍경쯤으로 여겼던 것 같다. 제철 과일을 사계절 내내 먹을 수 있는 기술(?)을 생각한다면 도심 속 스마트 농장이 이상한 일이 아닌데도 낯선 건 왜일까. 체험할 경험이 흔치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모르고 지나친 당연한 것쯤으로 치부한 것인지도. 조용히 찾아온 봄처럼 우리 곁에서 어느새 진화를 거듭하는 스마트팜.
| 사진 셔터스톡
철근 콘크리트 속에서 움트는 도심형 스마트 농장
바쁜 일상에서 햄버거는 빠질 수 없는 간편식이다. 기름진 고기와 아삭한 채소, 자극적인 각종 소스가 입안에서 어우러질 때의 기쁨은 마음 한구석 건강에 대한 죄책감마저 잊게 한다. 그런데 2021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시판 중인 햄버거에서 양상추가 사라진 것. 고기 덕후들에게는 햄버거를 먹을 때마다 양상추를 빼야 하는 번거로운 절차가 하나 사라진 셈이지만, 대부분의 햄버거 러버들에게 양상추의 부재는 아쉬움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양상추가 사라진 햄버거는 누리꾼들 사이에서 불고기 마카롱이라는 재치 있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양상추만이 아니다. 지난해 여름, 상추 가격이 단숨에 6배 오르며 고깃집에서 “상추 더 주세요”라는 말을 꺼내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일련의 사건들은 채소 공급의 불안정에서 기인한다. 2021년 불고기 마카롱 사태의 배경은 때 이른 가을 한파로 인한 잎채소의 냉해 피해였다. 기온과 강수에 민감한 상추도 마찬가지. 우리는 각종 매체를 통해 기후 변화 등의 소식을 접하곤 하지만 생활 속에서 깊이 체감하진 못한다. 하지만 햄버거에서 양상추가 빠졌을 때, 고깃집에서 상추를 더 먹을 수 없을 때 거대 담론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구나를 느끼게 된다. 기후 변화만이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물류대란,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전쟁 등 다양한 외생변수들이 평화로운 밥상을 위협한다. 우리는 여타 물품처럼 먹거리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일련의 사태로 인해 곡물 및 주요 원재료의 원활한 수급이 어려워지면 평범한 일상은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다.
특히 도시는 먹거리 자급이라는 측면에서 유독 취약하다. 도시에서 소비되는 먹거리의 대다수는 교외 지역의 농장, 혹은 식료품을 제조하는 공장에서 공급받는다. 어떤 이유로 이 가치사슬이 끊어지게 되면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굶주릴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방전이다. 구 소련을 공격한 독일군은 러시아의 제2도시 레닌그라드를 900일가량 포위하고, 도시로 들어가는 모든 식료품 공급을 차단했다. 이 같은 비인륜적 작전의 결과로 100만여 명의 레닌그라드 주민들이 굶어죽었다. 극단적이지만 평소에는 편리한 도시가 얼마나 취약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종합해보자면, 현대 도시민이 누리고 있는 풍요롭고 다채로운 밥상은 생각보다 안정적이지 않다. 이는 스마트시티도 예외는 아닐 터. 미래 한국 스마트시티 시민들은 우리 밥상에 별일 없기만을 기도할 수밖에 없는 걸까?
굳이 도시 속 인공 농장을 만드는 이유
도심형 스마트팜을 활용하면 날씨와 같은 외생변수들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 도심형 스마트팜은 외부와 단절된 실내공간에서 인공조명, 급수, 인위적인 영양 공급으로 작물을 재배한다. 혹한, 한파, 가뭄 등 예기치 못한 자연환경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다. 기술을 활용한 생산공정의 표준화는 수확량을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품질 측면에서도 살펴볼 만하다. 앞서 언급한 햄버거 등 프랜차이즈 식품의 경우 균질한 상품을 공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뉴스에서 종종 보도되는 것처럼 식품에 포함된 채소에서 벌레라도 나온다면 브랜드 이미지에 심대한 타격을 주기 마련. 도심형 스마트팜에서 재배한 채소의 경우 품질 우려를 덜 수 있다. 철저한 방역이 이뤄진 밀폐된 공간에서 자란 채소는 생산 단계에서 벌레 등 이물질이 포함될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 또 노지에서 자란 상품과 다르게 동일 품종을 동일 환경에서 재배하기 때문에 균질한 크기와 맛을 보장한다.
아울러 생산성 향상과 친환경적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도심형 스마트팜은 수직형 스마트팜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는 말 그대로 식물을 키우는 공간에 층을 쌓아서 수직형으로 만드는 것. 단독주택 부지에 아파트를 건축하면 단위면적당 더 많은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또 햇빛·영양·물 공급 등을 정교하게 조작할 수 있어 노지에서 재배할 때보다 생산성이 높다. 일부 작물의 경우 노지 재배에 비해 1.5배 이상 빠르게 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체 및 작물에 따라 다르지만, 단위면적당 생산성은 최대 수백 배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친환경은 덤이다. 일단 오폐수가 발생하지 않고 작물을 재배하는 데 필요한 물도 노지 농업의 1/10 수준이다. 또한 생산지에서 최종 소비처인 도시까지 도달하는 데 이동거리가 짧아 식재료 이동 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 소위 푸드 마일리지 역시 매우 짧아진다.
지하철 역사 한편에 마련된 도심형 스마트팜 시설에서 자라고 있는 녹색 채소 | 사진 황필주
노령화 등 우리 사회 거대한 고민에 대한 대안
스마트팜은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도 의미가 있다. 일단 도심형 스마트팜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최대 과제인 노령화 문제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농업은 사람의 노고가 많이 투입되는 노동집약적 산업이다. 그런데 현 시기 농촌은 인력 수급에 어려움이 많다. 평생 농사를 지어온 농부들은 늙어가고,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 빈틈을 메우고 있지만 영구적 대안이라고 볼 수 없다. 결국 농촌의 빈자리는 젊은이들이 대체해야 할 텐데 당장 그럴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농촌에서의 삶을 불편해하고, 농업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농촌사회가 직면한 인력 문제는 부족하나마 도심형 스마트팜에서 길을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수직 공장형 스마트팜의 경우 노지에서 농사 짓는 것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손이 적게 든다. 표준화·기계화가 상당히 진행되었을 뿐더러 ICT 기술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형화된 공장 프로세스를 갖추면 로봇 등 인력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이 진입하기 편해진다. 자동차 공장에서 용접과 도장 등의 업무를 산업용 로봇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자동으로 수행하는 것을 떠올리면 쉽다.
두 번째로 도시 근교에 위치한 도심형 농장은 인력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가 유리하다. 이는 여타 산업에서 나타나고 있는 트렌드를 봐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판교에 IT 기업들이 몰려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서울 강남과의 접근성이 큰 몫을 한다. 젊은 개발 인력들이 서울과 먼 지방에 소재한 기업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트렌드를 반영한 것이다. 또 다른 첨단산업, 데이터센터의 설치 및 운영도 마찬가지. 관계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데이터센터 입지를 수도권에 두려는 이유도 관련 인력들이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근무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심형 스마트팜은 도시 인프라를 포기할 수 없는 젊은이들에게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전통 농장의 일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젊은이들을 인프라가 열악한 농촌사회로 끌어들이는 전략에 집중했다면 공간적 제약요건을 해소한 도심형 스마트팜의 경우 오히려 인력이 풍부한 곳으로 이동하는 전략을 사용할 수 있다. 도심형 스마트팜은 도시의 유휴 공간을 활용하는 데도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예컨대 사용하기 애매한 대형 건물의 주차장 한쪽, 도시계획의 변화로 더 이상 활용하지 않는 지하철 역사의 어딘가, 공실이 되어버린 상가 어디든 이론적으로는 도심 속 농장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 같은 도시공간의 확장은 도심 속 유휴 부지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개념을 확장해보면 도심형 스마트팜의 활성화에 따라 생기게 될 농촌의 빈자리는 한국 농업의 고질적 숙젯거리로 지적되는 영세 농장의 대형화로 이어지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다.
도심형 스마트팜의 안정된 환경 속에서 단위면적당 생산성은 극대화된다. | 사진 황필주
어디에 어떻게 있을까 아는 만큼 보인다!
도심형 스마트팜은 이러한 기술적·사회적 장점들을 조합해 시나브로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실제로 멀지 않은 곳에서 도심형 스마트팜을 보고 느낄 수 있다. 가장 손쉽게 와닿는 사례는 마트, 카페 내 도심형 스마트팜 생산상품 및 시설이다.
대형 가구매장 속 카페테리아 한편에 마련된 스마트팜 시설. 이곳에서 재배한 채소는 현장에서 바로 요리로 가공한다. | 사진 황필주
이케아 광명점에서는 매장 내에 수직형 스마트팜 시설을 구비하고, 해당 시설에서 수확한 샐러드용 채소를 직접 조리해 판매하고 있다. 대형 마트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는 중이다. 상암월드컵경기장에 위치한 홈플러스의 경우 스마트팜 시설을 활용한 카페를 개장해 고객들에게 편의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손을 걷어붙인 곳은 이마트. 이마트는 컨테이너 스마트팜으로 유명한 엔씽과의 협력으로 이천 엔씽 스마트팜 시설에서 생산한 채소를 전량 매입해 이마트 매장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긍정적인 반응에 힘입어 스마트팜에서 생산한 채소의 종류와 공급량을 더욱 늘린다는 복안이다. 이마트의 영원한 라이벌, 롯데 역시 자체 스마트팜 브랜드 상표권을 출원하는 등 적극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중소 마트들도 마찬가지. 충남 천안에서 영업 중인 메가 도매마트의 경우, 매장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 스마트팜 시설을 직접 운영하며 생산한 채소를 판매 중이다.
녹색을 테마로 하는 카페들도 스마트팜 시설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엔씽은 서울 압구정동 한복판에 위치한 본사 건물 1층에 식물성 도산이라는 카페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우주의 소행성 어딘가를 떠오르게 하는 인테리어 속 스마트팜 기기들이 녹색 채소와 조화를 이룬 가운데 직접 생산한 채소로 샐러드나 주스 등으로 가공해 제공하는 것. 이렇듯 자체 사업을 진행하는 엔씽은 물론 스마트팜 사업과 무관해 보이는 곳도 카페 운영에 도심형 스마트팜 기술을 활용 중이다. 리브팜, 윤잇팜과 같은 카페 및 식당은 규모는 작지만 자체 스마트팜 시설을 구비하고, 여기서 생산한 상품을 가공, 판매해 고객들에게 볼거리와 신뢰를 제공하고 있다.
스마트팜을 체험할 수 있는 곳도 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서울 지하철역 곳곳에 위치한 메트로팜. 팜에이트라는 국내 최대 도심형 스마트팜 업체에서 운영하는 스마트팜 카페는 생산보다 체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 역사에 스마트팜 시설을 설치, 시민들에게 재배 및 가공 등의 체험 기회를 제공하며 도심형 스마트팜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는 것. 특히 아이들을 위한 스마트팜 체험 프로그램이 큰 호평을 받고 있다.
공공기관 역시 스마트팜 홍보에 적극적이다. 서울 강남구는 세곡동 한편에 물고기 양식과 작물을 함께 길러 수확하는 순환형 수경재배 시스템인 ‘아쿠아포닉스’ 및 스마트팜 시설을 설치하고 시민들의 체험과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바람을 쐬러 나간 교외에서도 스마트팜 시설을 체험할 수 있다. 충북 진천에 위치한 뤁스퀘어가 대표적. 자연 속 카페와 어우러진 스마트팜 체험 시설은 가족과 함께 나들이하기에도 좋다.
실제 체험하기는 힘들어도 도심형 스마트팜 기술을 활용해 상업화를 시도한 시설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국내 최대 도심형 스마트팜 업체인 팜에이트는 평택 본사에 위치한 스마트팜 시설을 활용해 새싹채소, 잎채소 등을 생산, 대형 마트와 대형 급식업체, 각종 프랜차이즈에 납품하고 있다. 참고로 공장 전체가 거대한 수직형 농장인 팜에이트의 본사 생산시설은 사전 신청만 하면 체험해볼 수 있다는 점도 쏠쏠한 정보. 또 반도체 회사 출신 CEO와 임직원들이 모여 만든 넥스트온이라는 업체는 도로 폐쇄로 더 이상 활용하지 않는 충북 옥천의 고속도로 터널 공간을 이용해 세계 최대 규모의 식물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넥스트온은 서울 한복판 남부터미널 지하에 수직형 스마트팜 시설도 운영 중이다. 앞서 언급한 엔씽은 경기 이천에 위치한 이마트 후레쉬센터 옆에 38동 규모의 컨테이너형 스마트팜을 설치해 이마트 납품을 진행하고 있다.
기사 전문은 <XITY> 매거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ditor KIM DONG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