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STRUCTION |
스마트 주거 플랫폼 “짓지 않고 쌓는다고요?”
XITY No.1 창간호
2023.05.30
묵은 방법을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대안을 혁신이라고 부른다. 이동수단이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변해가는 것이 대표적. 100년 전 2차 산업혁명 그림자에서 머물던 건축 및 주거 분야에도 혁신의 조짐이 보인다. 건물을 짓지 않고 블록처럼 쌓아가는 모듈러 건축 이야기다.
| 사진 JENL08/SHUTTERSTOCK.COM
맨해튼 한복판에 조립식 호텔을 지었다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도시는 어디일까? 각 문화와 지역 간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 하나를 꼽으라면 다소 엇갈릴지 모르지만 세계 3대 도시라 하면 그중 빠질 수 없는 곳이 뉴욕 아닐까. 전 세계 경제·문화 중심지라는 명성에 걸맞게 관광객 수도 천문학적이다. 뉴욕관광청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동안 관광 목적으로 뉴욕을 방문한 인원은 내국인을 포함해 5,640만 명에 달한다. 사업차 방문한 사람들까지 감안하면 총방문객 수는 한반도 남북한 인구를 합친 것보다 많지 않을까 싶다.
자연히 뉴욕에서 숙박은 중요한 이슈이자 산업이다. 2022년 기준 뉴욕시에는 13만여 개의 객실이 운영 중이다. 다양한 방문객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초호화 스위트룸부터 한 몸 누이기 빠듯한 작은 객실까지 그 형태는 천차만별일 터. 호텔별 운영 전략에 따라 콘셉트는 다를 수 있지만 뉴욕이라는 곳의 상징성을 생각해보면 소위 ‘급’ 떨어지는 서비스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브랜드 호텔 체인은 두말할 것도 없다.
까다로울 수밖에 없어 보이는 뉴욕 호텔 시장과 관련해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다. 지난 2019년 세계적인 호텔 체인 ‘메리어트’에서 맨해튼 한복판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모듈러 호텔을 짓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 모듈러 호텔? 호텔을 조립식으로 짓는다고? 물론 ‘AC 메리어트’라는 브랜드가 그룹 내 최고급은 아닐지언정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이 선택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쉽게도 2020년 말 종료 예정이었던 해당 프로젝트는 마무리되지 못했다. 2020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발 한파를 피해 갈 수 없었기 때문. 다만 메리어트그룹은 이미 2014년부터 모듈러 호텔과 관련한 연구를 시작했고, 그룹 내 보급형 브랜드를 담당하는 ‘AC 메리어트’는 상당한 모듈러 호텔 건축 및 운영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메리어트 자료에 따르면 2011년 이후 북미지역에서 호텔을 짓고 개장하는 시간이 과거 대비 최대 50%까지 늘어났다고 한다. 당시 폭발하는 호텔 수요에 비해 노동자들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숙련된 노동자를 찾기는 더욱 어려웠기 때문이다. 메리어트그룹은 건설이 지연되는 것에 대한 해법으로 공장에서 만든 호텔을 현장에서 조립하는 모듈러 공법에 주목했다.
메리어트 사례는 매우 상징적이지만 해외에서는 낯선 일이 아니다. 네덜란드에 기반을 둔 시티즌 M(Citizen M)이라는 브랜드는 이미 뉴욕 맨해튼을 포함한 전 세계 주요국에 모듈러 객실을 제공 중이다. 호텔만이 아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코로나 초창기 중국은 모듈러 공법을 도입해 수많은 병실을 순식간에 지었다. 미국, 영국, 싱가포르와 같은 곳에서 앞다투어 초고층 모듈러 빌딩을 건설하는 모습은 마치 100년 전 경쟁적으로 진행된 전 세계 마천루 전쟁을 떠오르게 한다.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이 집중하는 이유가 있을 터. 문득 모듈러 건설의 현실과 한국 현황이 궁금해졌다.
공장에서 건물 지어 현장에서 조립하는 공법
모듈러 주택이란?
모듈러 주택은 대표적인 공업화 주택으로서 창호, 벽체, 전기배선, 배관, 욕실, 주방기구 등의 자재와 부품을 선조립한 박스 형태의 모듈을 공장에서 제작해 현장에 운반한 후 조립 및 설치하는 방식의 주택이다.
먼저 모듈러 공법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 머릿속 건설 현장은 정형화되어 있다. 아파트를 비롯한 대형 건축물 건설 현장을 유심히 살펴보면, 기반을 다지기 위해 땅을 파고, 그 위에 철근과 콘크리트를 조합해 건물의 뼈대가 되는 기둥과 바닥을 만든다. 이렇게 모양을 갖춘 건물의 큰 틀에 엘리베이터, 냉난방 등 현대 건물에 필수적인 장치를 설치하고, 각종 외장재와 인테리어를 갖추는 것이 보통 건설 현장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반면 모듈러 공법의 경우 이 틀이 꽤 다르다. 전통적인 공법은 건물의 뼈대부터 인테리어까지 현장에서 모두 마무리 짓는다면, 모듈러 공법은 건물 일부를 공장에서 제작한 후 현장에서 레고블록처럼 쌓아올리면 된다. 이론적으로는 터 파기 등 일부 작업을 제외하고 전체 건물의 90%가량을 공장에서 사전 조립한 후 현장으로 수송해 완성할 수 있다. 이 같은 방법을 편의상 모듈러 공법이라고 부르지만, 더 큰 의미에서는 OSC(Off-Site Construction)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우리말로는 ‘현장 외 건설’ 정도로 바꿔보면 어떨까 싶다. 현장에서 모든 것이 이뤄지는 기존 건설과 다르게, 공장에서 대부분의 건물을 완성하는 개념이랄까.
간결하고 기능에 초점을 맞춘 구조와 인테리어를 선보였던 평창 모듈러 호텔 | 사진 김동원
2018년 평창올림픽 또 다른 국가대표, 모듈러 호텔
우리나라에서 모듈러 건설이 본격화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비교적 규격화가 용이한 초등학교와 군 막사 등 일부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소규모로 이뤄졌다. 본격적인 주목을 받은 프로젝트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제작한 미디어 레지던스 모듈러 호텔이다. 올림픽 기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 내 전 세계 취재진들이 머물 숙소로 4층 규모의 저층형 원룸 형태로 기획되었다. 지금은 평창 ‘위드포스코레지던스’라는 명칭으로 포스코 임직원 휴양소로 활용되고 있다. 직접 해당 장소를 방문해 꽤 기념비적인 프로젝트를 짧은 시간이나마 체험해보았다.
일단 외관은 철 골조로 이뤄진 건물답게 매우 현대적이었다. 내부 역시 마찬가지. 차이점은 여타 고급 호텔들과 다르게 기능에 매우 충실한 느낌을 주었다는 점이다. 한때 유행했던 공장형 카페 인테리어랄까? 당초 기획이 상업용보다는 취재진의 임시 숙소로 활용하고 차후 분해할 요량이었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이해할 만하다. 숙소 내부는 7평(23m2) 정도로 넉넉하진 않지만 온돌형 구조로 설계되어 4인 가족이 머물기에도 충분해 보였다. 다소 이질적인 느낌도 있었다. 일단 철 골조로 지어진 영향인지 계단을 오르내리고 복도를 걸을 때 울림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 시설은 영구 거주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모듈러 건축물을 대표한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철골 구조 모듈러 공법을 활용해 지은 5층 규모의 학교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딱딱해 보이는 외관이 만드는 선입견과 달리 잠시 머물며 추억을 쌓거나 공부하며 꿈을 만들어가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포스코A&C가 준공한 국내 최고층 모듈러, ‘광양 기가타운(포스코 직원 생활관)’ | 포스코 A&C 제공
본격적으로 시동 건 국내 모듈러 건설 현장
본격적으로 거주를 염두에 두고 진행한 프로젝트들도 이미 완성되었거나 건설 중이다. 대표 사례가 포스코건설과 포스코A&C에서 추진한 포스코 기가타운과 경기주택도시공사의 발주로 현대엔지니어링에서 시공한 용인 영덕 행복주택이다.
먼저 포스코 기가타운은 전남 광양제철소 앞에 위치한 지하 2층, 지상 12층 규모의 포스코 직원 기숙사 건물이다. 이 프로젝트가 인상적인 이유는 같은 모양과 구조의 기숙사를 쌍둥이 형태로 건설해 전통적인 철근 콘크리트 공법과 모듈러 공법을 비교할 수 있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철근 콘크리트 공법을 활용한 파트는 완공까지 11개월 정도 소요됐지만, 모듈러 공법을 활용한 부분은 제작부터 마감까지 7개월가량 걸렸다. 대략 40% 정도의 공기를 단축한 셈. 명목 비용은 20% 정도 더 들었지만, 건축 시간 단축, 금융 비용 절감, 환경 비용 등이 포함된 부가 효과를 감안하면 전체 공사비 인상분은 4% 남짓.
그렇다고 품질을 빼놓을 수는 없을 터. 완성된 건물 내부는 일반적인 기숙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고, 소음 및 결로 등을 측정한 주거성능 역시 기존 공법과 유사하거나 나았다. 실제 모듈러형 기숙사에 거주하는 직원들의 만족도도 높아서 기존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보다 모듈러 건물에 더 많은 지원을 한다는 것은 광양제철소 직원들의 공공연한 비밀이란다.
아쉬운 점은 실제 모듈러 건설 현장을 지켜볼 수 없었다는 점. 다행히도 용인에서는 또 다른 대규모 모듈러 건설사업이 진행 중이었다. 용인 영덕 행복주택은 경기주택도시공사에서 발주한 총 13층, 106세대 규모의 공공행복주택으로 올해 본격적으로 입주를 시작한다. 이 프로젝트가 의미 있는 이유는 ‘13층’이라는 데 있다. 우리나라는 건축법상 13층 이상의 건물을 지을 때 주요 구조물이 3시간 이상 견딜 수 있는 내화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기존 철근 콘크리트의 경우 큰 문제가 없는 반면, 철골이 축이 되는 모듈러 건축물의 경우 ‘13층’ 이상으로 짓기에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용인 영덕 프로젝트는 각종 공법을 동원해 현행법상 문제없는 모듈러 건물을 만들어보는 실증적 프로젝트다.
용인 영덕 행복주택 건설 현장 외경, 용인 영덕 행복주택 내부 | 사진 황필주
현장에 도착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역시 모듈러 적층 모습이었다. 미리 준공된 코어 골조를 중심으로 대형 크레인을 활용해 모듈러를 인양하고, 제자리에 놓인 모듈러를 작업자들이 현장에서 결합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여타 건설 현장에 비해 환경이 정갈했다. 보통의 현장이라면 시멘트, 토사, 각종 부자재들이 널려 있기 마련인데 모듈러 건설 현장은 후속 작업을 위한 부자재들이 최소화된 모습이었다.
관계자의 안내를 받으며 실내에 들어가 보니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과 크게 다른 점을 느끼지 못했다. 다만 엘리베이터와 기계설비가 설치된 코어 골조와 각 모듈러가 다양한 크기의 플레이트와 볼트 등으로 고정돼 있는 점이 색달랐다. 소위 ‘레고’같이 조립한다는 모듈러형 고층 주택에 와 있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완성된 세대로 진입해보았다. 가장 주목해서 느끼고자 한 부분은 철골형 모듈러 건축물의 이질감. 발을 구르고 소리를 내봤지만 큰 울림은 감지하지 못했다. 오히려 어설픈 기존 원룸보다 쿵쿵거림이 덜하다는 느낌이랄까. 아직 완공 전이어서 주거성능평가가 완료되진 않았지만, 사전 성능평가에서는 법정 기준 대비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짧게나마 사용자 입장에서 체험한 모듈러 건축물의 완성도는 기존 콘크리트 건축물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점을 느낄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인지하지 못한 아쉬운 점들이 보일 수 있고, 개선해야 할 점도 있겠지만 스마트시티를 구성하는 좋은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남았다.
기사 전문은 <XITY> 매거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ditor KIM DONG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