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COLUMN |  

ESG, 기업의 ‘양심’



XITY No.2

2023.07.24


이제는 경제가 도덕을 제대로 품어야 할 때가 되었다. 인간의 모든 행위에 가격을 매기면 사회가 유지되는 데 필요한 도덕적이고 시민적인 자산이 잠식된다. 경제적 불평등, 정치 계층화, 사회의 불안정을 부추기는 ‘야수 자본주의’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친애’에 기반한 정치적 자유주의를 확립할 수 없다.

| 최재천 교수

동물행동학을 연구하는 대한민국 대표 과학자. 서울대학교에서 동물학을 전공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에서 생태학 석사학위, 하버드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와 국립생태원장을 거쳐 현재 이화여대 석좌교수로 있다. 생명다양성재단 대표이면서 코로나19 일상회복지원위원회 공동위원장을 거친 그는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choemazon)을 통해 자연과 인간 생태계에 관한 폭넓은 주제로 다양한 세대와 소통 중이다. | 사진 황필주

플라톤의 《국가》 제9권에는 소크라테스가 분류한 세 종류의 사람들이 소개되어 있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세상에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 명예를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무려 40년이 넘도록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총장을 지내고 193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철학자 니콜라스 버틀러(Nicholas M. Butler)는 삶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번번이 일을 그르치는 사람이 있고 잘못된 것을 보고도 수수방관하는 부류의 사람도 있다고 설명했다.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그의 소설 《전락(The Fall)》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아는 사람을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어. 거짓말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 사람, 아무것도 숨기지 않기보다는 차라리 거짓말을 하는 사람,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짓말도 하고 숨기기도 하는 사람이 있어.” 


수수방관만 하는 게 아니라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행동경제학은 이 맥락의 흐름을 이어받아 우리 인간을 철저하게 자기 이익만 챙기는 이기적인 사람, 거의 맹목적으로 이타적인 사람, 그리고 상황에 따라 달리 행동하는 보응적(報應的)인 사람(reciprocator)으로 나눈다. 이기적인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든 철저하게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일을 찾아서 실행한다. 그들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대체로 성공적이며 일부는 상대적으로 편안한 삶을 누리며 산다. 테레사 수녀나 이태석 신부, 그리고 주정뱅이 일본인을 구하려 선로에 뛰어들었다가 목숨을 잃은 한국 청년 이수현처럼 희생적이고 이타적인 사람은 종종 자신의 소중한 목숨까지 내놓는다. 그들은 때로 이용당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관대하다. 

그런가 하면 보응적인 사람은 평소에는 자신을 위해 사뭇 이기적으로 살지만 주변 상황이 어려워지면 기꺼이 이타적으로 행동한다. 코로나19 환자를 돌보겠다고 자원해서 극한의 업무 환경을 이겨낸 간호사들이 대표적인 보응적 인간이다. 열심히 번 돈의 일부를 성실하게 세금으로 헌납해 국가로 하여금 덜 가진 사람들을 보살피게 하고, 내 한 표가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기꺼이 투표장에 나타나 신성한 한 표를 행사하는 평범한 시민도 여기에 해당한다. 지난 30여 년 동안 세계 각처에서 조사와 연구를 수행한 행동경제학자들에 따르면 맹목적으로 이타적인 인간은 우리 사회에 그리 많지 않다. 그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진짜 놀라운 것은 철저하게 이기적인 인간들이 실제로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조사한 모든 실험집단에서 전체의 5분의 1을 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머지 5분의 4는 보응적 인간이다. 언제든 이타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압도적으로 많단다. 


나도 당연히 보응적 인간임을 고백한다. 얼마 전 나를 인터뷰하러 온 기자가 그동안 살면서 내가 한 일이라며 다짜고짜 줄줄이 읊어댔다. 대학교수는 모름지기 연구에만 매진해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온갖 눈총을 받으면서도 일찌감치 과학 대중화 운동에 뛰어든 일, 헌법재판소에서 부계혈통주의의 생물학적 부당함을 변론해 호주제 폐지에 기여한 일,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대강 사업을 반대하다 온갖 정치적 탄압을 겪은 일, 불법으로 포획된 돌고래를 자연으로 돌려보낸 일 등. 마주 앉아 듣기 민망해하는 내게 기자는 불쑥 어떻게 이런 많은 일에 용감하게 나섰느냐 물었다. 뜻밖의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긴 나는 이내 끝내 양심을 저버릴 수 없었다고 대답했다. 


고백컨대 나는 태생적으로 비겁한 사람이다. 지나치게 엄한 아버지 밑에서 크느라 일이 벌어지면 나는 우선 숨을 곳부터 찾았고 들키더라도 늘 변명을 늘어놓기 바빴다. 어른이 돼서 참여한 거의 모든 일에도 나는 일단 숨으려 했다. 되도록이면 얽히지 않으려 피했건만 끝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양심의 부글거림을 어쩌지 못해 나서고 말았다. 그렇게 몇 발짝 내딛다 보면 너무나 자주 맨 앞줄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솔직히 많이 당황스러웠다. 예전에 우리는 ‘양심’이라는 단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했다.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예끼, 이런 양심에 털 난 놈 같으니”, “양심은 엿 바꿔 먹었냐?” 등.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지난 20여 년 동안 양심이라는 단어가 자취를 감췄다. 그러다 최근 양심의 부활을 지켜보고 있다. 나는 ESG를 ‘기업의 양심’으로 이해한다. 드디어 기업이 양심에 거리낌이 없도록 행동하려 한다. 


보응적 인간은 자기에게 손해가 있더라도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에 기꺼이 동참한다. 그들은 때로 자신에게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부당한 행위나 행위자를 분연히 응징한다. 정의로움도 진화하지만 그와 정반대인 악의(spite)도 진화할 수 있다. 이타성(altruism)의 진화를 ‘포괄 적합도(inclusive fitness)’라는 유전적 개념으로 설명한 위대한 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William Hamilton)은 악의의 진화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Spite’는 ‘그럼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라는 관용구에나 쓰일 뿐 일상생활에서 그리 자주 듣는 단어는 아니다. 이타성은 자신의 행위로 인해 친족이 얻을 포괄적 이득이 남에게 베풀며 겪는 자신의 피해보다 클 때 진화한다. 이와 반대로 악의적 행동과 성향은 내가 받을 손해보다 상대가 입을 타격이 더 크면 진화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한데 지난 50여 년 동안 참으로 많은 생물학자들이 자연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악의를 찾았건만 아직 완벽한 예를 발견하지 못했다. 여러 다양한 경우가 언급되지만 이내 다른 학자들의 반론이 이어진다.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있을 법한데 실례는 아직 없다. 

인간은 예외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보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파 훼방을 놓는 행위 등 인간 사회에서 악의의 예는 차고 넘친다. 비록 창작 세계에 존재하는 인물이지만 《해리 포터》에 나오는 어둠의 마법 방어법 교수이자 장학관인 덜로리스 엄브리지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악의의 극단을 보여준다.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즐겨 입는 분홍색 옷으로 치장했건만 해당 역을 연기한 배우조차도 ‘염병할 괴물’이라고 욕할 정도로 사악한 인물이다. 실제 세계에서는 2019년 일본 정부가 끝내 우리나라를 이른바 ‘백색국가’ 목록에서 제외한 결정을 대표적인 악의 행위로 들 수 있다. 우리 주력 산업에 타격을 입히면 일본 기업이 겪을 충격도 만만치 않을 텐데 오로지 한국이 더 힘들 것이라는 계산을 손에 쥐고 감행한 어리석은 인간 악의의 전형이다. 

나는 악의가 인간 세계에서는 횡행하지만 동물계에서는 진화하지 않은 이유를 생태계 네트워크에서 찾고 있다. 둘이 서로 물고 뜯는 와중에 주변의 다른 경쟁자들이 득세하며 악의의 고리에 얽힌 당사자들은 종종 동반 추락한다. 일본 정부의 비신사적 행위에 우리 정부도 단호하게 대응했다. 그 무렵 상당수의 국제전문가들은 한국과 일본이 악의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는 동안 이웃나라 대만과 중국이 반사이익을 거둘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실제로 세계 메모리 시장에서는 압도적 1위지만 파운드리 시장에서 독보적 1위인 대만의 TSMC를 추격하려던 삼성전자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나는 언젠가 인류가 멸종한다면 그건 바로 ‘악의의 저주(curse of spite)’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도 없지만 잡은 손 물어뜯고 살아남은 생명은 더더욱 없다. 


나는 요즘 들어 부쩍 많이 언급되고 있는 ‘사회적 가치’를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보듬어야 할 가치’라고 규정한다. 기업도 예외일 수 없다. 미국 생태학자 개릿 하딘(Garrett Hardin)은 일찍이 “생태학은 포괄적인 과학이고 경제학은 그것의 작은 전문 분야”라고 정의했다. 사회적 가치는 흔히 전통과 문화, 그리고 사회의 구조와 기능에 의해 규정되는 도덕적 함의와 기준이라고 정의한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는 최근 들어 비로소 ‘따뜻한 자본주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윤리철학자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은 이런 고민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라고 뭉뚱그렸지만, 이제는 경제가 도덕을 제대로 품어야 할 때가 되었다. 인간의 모든 행위에 가격을 매기면 사회가 유지되는 데 필요한 도덕적이고 시민적인 자산이 잠식된다. 경제적 불평등, 정치 계층화, 사회의 불안정을 부추기는 ‘야수 자본주의’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친애’에 기반한 정치적 자유주의를 확립할 수 없다. 


사무엘 볼스(Samuel Bowles)는 그의 근저 《도덕경제학》에서 법을 설계하고 정책을 수립하고 사업을 기획할 때 호모 이코노미쿠스를 행위 모델로 삼는 것이 합리적일 수 없는 이유를 두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패러다임에 따라 정책을 펴면 도덕적 무관심과 이기심이라는 가정을 점점 더 사실로 만들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벌금이나 보상 같은 물질적 인센티브가 때로는 잘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흄(David Hume)이 주장하는 대로 부정직한 사람의 탐욕을 이용할 수 있도록 아무리 정교하게 인센티브를 설계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좋은 거버넌스를 확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제적 인센티브는 선한 시민을 대체할 수 없다. 선한 기업도 마찬가지다.


writer CHOE JAEC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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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기업의 ‘양심’


XITY No.2

2023.07.24


이제는 경제가 도덕을 제대로 품어야 할 때가 되었다. 인간의 모든 행위에 가격을 매기면 사회가 유지되는 데 필요한 도덕적이고 시민적인 자산이 잠식된다. 경제적 불평등, 정치 계층화, 사회의 불안정을 부추기는 ‘야수 자본주의’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친애’에 기반한 정치적 자유주의를 확립할 수 없다.

| 최재천 교수

동물행동학을 연구하는 대한민국 대표 과학자. 서울대학교에서 동물학을 전공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에서 생태학 석사학위, 하버드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와 국립생태원장을 거쳐 현재 이화여대 석좌교수로 있다. 생명다양성재단 대표이면서 코로나19 일상회복지원위원회 공동위원장을 거친 그는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choemazon)을 통해 자연과 인간 생태계에 관한 폭넓은 주제로 다양한 세대와 소통 중이다. | 사진 황필주

플라톤의 《국가》 제9권에는 소크라테스가 분류한 세 종류의 사람들이 소개되어 있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세상에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 명예를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무려 40년이 넘도록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총장을 지내고 193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철학자 니콜라스 버틀러(Nicholas M. Butler)는 삶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번번이 일을 그르치는 사람이 있고 잘못된 것을 보고도 수수방관하는 부류의 사람도 있다고 설명했다.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그의 소설 《전락(The Fall)》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아는 사람을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어. 거짓말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 사람, 아무것도 숨기지 않기보다는 차라리 거짓말을 하는 사람,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짓말도 하고 숨기기도 하는 사람이 있어.” 


수수방관만 하는 게 아니라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행동경제학은 이 맥락의 흐름을 이어받아 우리 인간을 철저하게 자기 이익만 챙기는 이기적인 사람, 거의 맹목적으로 이타적인 사람, 그리고 상황에 따라 달리 행동하는 보응적(報應的)인 사람(reciprocator)으로 나눈다. 이기적인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든 철저하게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일을 찾아서 실행한다. 그들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대체로 성공적이며 일부는 상대적으로 편안한 삶을 누리며 산다. 테레사 수녀나 이태석 신부, 그리고 주정뱅이 일본인을 구하려 선로에 뛰어들었다가 목숨을 잃은 한국 청년 이수현처럼 희생적이고 이타적인 사람은 종종 자신의 소중한 목숨까지 내놓는다. 그들은 때로 이용당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관대하다. 

그런가 하면 보응적인 사람은 평소에는 자신을 위해 사뭇 이기적으로 살지만 주변 상황이 어려워지면 기꺼이 이타적으로 행동한다. 코로나19 환자를 돌보겠다고 자원해서 극한의 업무 환경을 이겨낸 간호사들이 대표적인 보응적 인간이다. 열심히 번 돈의 일부를 성실하게 세금으로 헌납해 국가로 하여금 덜 가진 사람들을 보살피게 하고, 내 한 표가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기꺼이 투표장에 나타나 신성한 한 표를 행사하는 평범한 시민도 여기에 해당한다. 지난 30여 년 동안 세계 각처에서 조사와 연구를 수행한 행동경제학자들에 따르면 맹목적으로 이타적인 인간은 우리 사회에 그리 많지 않다. 그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진짜 놀라운 것은 철저하게 이기적인 인간들이 실제로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조사한 모든 실험집단에서 전체의 5분의 1을 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머지 5분의 4는 보응적 인간이다. 언제든 이타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압도적으로 많단다. 


나도 당연히 보응적 인간임을 고백한다. 얼마 전 나를 인터뷰하러 온 기자가 그동안 살면서 내가 한 일이라며 다짜고짜 줄줄이 읊어댔다. 대학교수는 모름지기 연구에만 매진해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온갖 눈총을 받으면서도 일찌감치 과학 대중화 운동에 뛰어든 일, 헌법재판소에서 부계혈통주의의 생물학적 부당함을 변론해 호주제 폐지에 기여한 일,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대강 사업을 반대하다 온갖 정치적 탄압을 겪은 일, 불법으로 포획된 돌고래를 자연으로 돌려보낸 일 등. 마주 앉아 듣기 민망해하는 내게 기자는 불쑥 어떻게 이런 많은 일에 용감하게 나섰느냐 물었다. 뜻밖의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긴 나는 이내 끝내 양심을 저버릴 수 없었다고 대답했다. 


고백컨대 나는 태생적으로 비겁한 사람이다. 지나치게 엄한 아버지 밑에서 크느라 일이 벌어지면 나는 우선 숨을 곳부터 찾았고 들키더라도 늘 변명을 늘어놓기 바빴다. 어른이 돼서 참여한 거의 모든 일에도 나는 일단 숨으려 했다. 되도록이면 얽히지 않으려 피했건만 끝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양심의 부글거림을 어쩌지 못해 나서고 말았다. 그렇게 몇 발짝 내딛다 보면 너무나 자주 맨 앞줄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솔직히 많이 당황스러웠다. 예전에 우리는 ‘양심’이라는 단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했다.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예끼, 이런 양심에 털 난 놈 같으니”, “양심은 엿 바꿔 먹었냐?” 등.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지난 20여 년 동안 양심이라는 단어가 자취를 감췄다. 그러다 최근 양심의 부활을 지켜보고 있다. 나는 ESG를 ‘기업의 양심’으로 이해한다. 드디어 기업이 양심에 거리낌이 없도록 행동하려 한다. 


보응적 인간은 자기에게 손해가 있더라도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에 기꺼이 동참한다. 그들은 때로 자신에게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부당한 행위나 행위자를 분연히 응징한다. 정의로움도 진화하지만 그와 정반대인 악의(spite)도 진화할 수 있다. 이타성(altruism)의 진화를 ‘포괄 적합도(inclusive fitness)’라는 유전적 개념으로 설명한 위대한 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William Hamilton)은 악의의 진화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Spite’는 ‘그럼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라는 관용구에나 쓰일 뿐 일상생활에서 그리 자주 듣는 단어는 아니다. 이타성은 자신의 행위로 인해 친족이 얻을 포괄적 이득이 남에게 베풀며 겪는 자신의 피해보다 클 때 진화한다. 이와 반대로 악의적 행동과 성향은 내가 받을 손해보다 상대가 입을 타격이 더 크면 진화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한데 지난 50여 년 동안 참으로 많은 생물학자들이 자연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악의를 찾았건만 아직 완벽한 예를 발견하지 못했다. 여러 다양한 경우가 언급되지만 이내 다른 학자들의 반론이 이어진다.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있을 법한데 실례는 아직 없다. 

인간은 예외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보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파 훼방을 놓는 행위 등 인간 사회에서 악의의 예는 차고 넘친다. 비록 창작 세계에 존재하는 인물이지만 《해리 포터》에 나오는 어둠의 마법 방어법 교수이자 장학관인 덜로리스 엄브리지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악의의 극단을 보여준다.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즐겨 입는 분홍색 옷으로 치장했건만 해당 역을 연기한 배우조차도 ‘염병할 괴물’이라고 욕할 정도로 사악한 인물이다. 실제 세계에서는 2019년 일본 정부가 끝내 우리나라를 이른바 ‘백색국가’ 목록에서 제외한 결정을 대표적인 악의 행위로 들 수 있다. 우리 주력 산업에 타격을 입히면 일본 기업이 겪을 충격도 만만치 않을 텐데 오로지 한국이 더 힘들 것이라는 계산을 손에 쥐고 감행한 어리석은 인간 악의의 전형이다. 

나는 악의가 인간 세계에서는 횡행하지만 동물계에서는 진화하지 않은 이유를 생태계 네트워크에서 찾고 있다. 둘이 서로 물고 뜯는 와중에 주변의 다른 경쟁자들이 득세하며 악의의 고리에 얽힌 당사자들은 종종 동반 추락한다. 일본 정부의 비신사적 행위에 우리 정부도 단호하게 대응했다. 그 무렵 상당수의 국제전문가들은 한국과 일본이 악의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는 동안 이웃나라 대만과 중국이 반사이익을 거둘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실제로 세계 메모리 시장에서는 압도적 1위지만 파운드리 시장에서 독보적 1위인 대만의 TSMC를 추격하려던 삼성전자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나는 언젠가 인류가 멸종한다면 그건 바로 ‘악의의 저주(curse of spite)’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도 없지만 잡은 손 물어뜯고 살아남은 생명은 더더욱 없다. 


나는 요즘 들어 부쩍 많이 언급되고 있는 ‘사회적 가치’를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보듬어야 할 가치’라고 규정한다. 기업도 예외일 수 없다. 미국 생태학자 개릿 하딘(Garrett Hardin)은 일찍이 “생태학은 포괄적인 과학이고 경제학은 그것의 작은 전문 분야”라고 정의했다. 사회적 가치는 흔히 전통과 문화, 그리고 사회의 구조와 기능에 의해 규정되는 도덕적 함의와 기준이라고 정의한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는 최근 들어 비로소 ‘따뜻한 자본주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윤리철학자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은 이런 고민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라고 뭉뚱그렸지만, 이제는 경제가 도덕을 제대로 품어야 할 때가 되었다. 인간의 모든 행위에 가격을 매기면 사회가 유지되는 데 필요한 도덕적이고 시민적인 자산이 잠식된다. 경제적 불평등, 정치 계층화, 사회의 불안정을 부추기는 ‘야수 자본주의’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친애’에 기반한 정치적 자유주의를 확립할 수 없다. 


사무엘 볼스(Samuel Bowles)는 그의 근저 《도덕경제학》에서 법을 설계하고 정책을 수립하고 사업을 기획할 때 호모 이코노미쿠스를 행위 모델로 삼는 것이 합리적일 수 없는 이유를 두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패러다임에 따라 정책을 펴면 도덕적 무관심과 이기심이라는 가정을 점점 더 사실로 만들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벌금이나 보상 같은 물질적 인센티브가 때로는 잘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흄(David Hume)이 주장하는 대로 부정직한 사람의 탐욕을 이용할 수 있도록 아무리 정교하게 인센티브를 설계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좋은 거버넌스를 확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제적 인센티브는 선한 시민을 대체할 수 없다. 선한 기업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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