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OW GAMES |
야, 너두 페이커가 될 수 있어
XITY No.2
2023.07.31
몰래 하던 게임. 그때는 왜 그랬는지, 문제아처럼 인식됐다. PC방, 오락실은 금기의 장소였다. 이젠 그렇지 않다.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e-스포츠인 롤(LOL, League of Legends)은 결승전 시청자 수가 2억 명을 넘어설 만큼 웬만한 국제 스포츠 행사의 위상을 넘보고 있다. 롤의 최고 스타 페이커는 여느 스포츠 스타의 연봉을 훌쩍 뛰어넘는다. 더 이상 몇몇 청소년들의 전유물이 아닌, 전 세계인이 즐기는 하나의 문화가 됐다. 그리고 모든 이들이 즐기는 취미를 누구보다 잘하고 싶은 건 타고난 본성이다.
2019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e-스포츠 카운터 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 | 사진 셔터스톡
게임에 대한 시선의 변화
눈치 보면서 게임하던 시절이 있었다. 공부하지 않고, 게임기를 갖고 오래 놀아서 부모님에게 혼난 기억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시험 잘 보면 잠깐 할 수 있는 특권 정도 아니었을까? 오랜 시간 게임에 집중하면 눈치가 보이고, 꾸중 듣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오락실은 부모님 몰래 가야 하는 장소였다. 인터넷이 들어오고, 초고속 인터넷망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다른 유저와 실시간으로 같이 할 수 있는 게임이 등장했다. 스타크래프트, 포트리스, 레인보우식스, 카트라이더, 리니지 등. 새로운 게임과 함께 PC방이 생기면서 방과 후 친구들과 삼삼오오 PC방으로 가서 게임을 즐겼다.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는 듯했지만 여전히 시선은 곱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게임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NC, 넥슨, 넷마블, 크래프톤 등 게임사들이 증시에 상장되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했고, 국내 재벌 순위에서도 자수성가한 재벌은 게임사 대표가 많다. 메타버스, P2E(Play to Earn) 등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면서 게임과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생각해 보면 오늘날 메타버스 공간에서 자신의 아바타를 키우는 그 시작이 게임이었을지도 모른다. 게임 안에서 자신이 투영된 캐릭터를 성장시키고 육성하던 것이 아바타의 시초였을지도. 부정적인 시선의 온상이었던 게임이 이제는 우리 삶의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메타버스 등 신산업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무엇보다 e-스포츠의 등장이 게임의 대중화와 게임에 대한 인식 변화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임요환, 홍진호, 이윤열, 이영호, 김택용 등 스타크래프트 스타 프로게이머부터 페이커로 대표되는 LOL의 프로게이머까지.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인 1980년대까지는 게임의 ‘최고수’를 가릴 뿐 게임 플레이를 생업으로 살아가는 프로 e-스포츠 선수가 없었고, 대회 또한 단발성 이벤트로 끝났다. 게임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한 e-스포츠의 역사에 대해 잠시 짚고 넘어가 보자.
e-스포츠가 걸어온 길
국내 e-스포츠의 시작은 지난 1998년에 발매돼 많은 젊은이들을 컴퓨터 앞으로 불러모았던 ‘스타크래프트’다. 마침 같은 해 12월, 스타크래프트 발매사인 블리자드(blizzard)에서 개최한 ‘블리자드 래더 토너먼트’에서 우리나라 신주영 선수가 해외 게이머들을 잇따라 꺾고 우승하면서 국내 최초 프로 e-스포츠 선수로 인정받았다. 그의 우승으로 스타크래프트 대회도 많이 열리면서 점차 인기가 많아졌고, 스타크래프트 프로 리그인 KPGL이 창설되기에 이르렀다. 일종의 게임 리그가 생긴 셈이다.
첫 리그는 1999년 시작됐다. IMF로 온 나라가 힘들던 그때, 정부는 외환위기 극복과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정보산업 육성 정책으로 초고속 인터넷망을 구축했다. 이후 스타크래프트의 인기와 맞물리면서 PC방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관심과 열기도 그만큼 더 뜨거워졌고, 점차 e-스포츠라는 용어가 대중적으로 쓰이게 됐다. 마침내 한국e-스포츠협회(KeSPA)가 탄생하면서 스타크래프트 대회도 늘고, 프로게이머들이 속속 등장했다. 투니버스를 필두로 e-스포츠 전문 케이블 방송사가 생겨났는데, 2000년에는 세계 최초의 e-스포츠 전문 방송국인 온게임넷이 개국하기도 했다.
프로게이머들의 인기가 높아지자 당시 ‘쌈장’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던 이기석 씨를 비롯해 프로게이머들은 광고와 TV 토크쇼에도 출연했다. 요즘도 예능에 출연하는 임요환은 프로게이머 최초로 억대 연봉을 돌파했고(2002), 그의 라이벌인 홍진호 프로게이머 역시 두 번째로 높은 억대 연봉을 받았다. 그들의 경기를 일컫는 ‘임진록’, 그리고 2등을 많이 한 ‘콩진호’와 ‘2등’, ‘2’를 밈(meme)으로 만든 짤방은 요즘도 예능에서 자주 쓰인다.
2000년대는 삼성전자, SK텔레콤 같은 대기업들이 프로게임단을 창단하는 등 그야말로 e-스포츠의 황금기였다. e-스포츠의 올림픽이라고 할 수 있는 WCG(World Cyber Games) 대회도 개최됐다. 스타크래프트뿐 아니라 카운터스트라이크, 카트라이더, 피파(FIFA) 등의 게임도 대회가 생겼는데, 2010년에는 각종 e-스포츠 대회가 무려 206개에 달할 정도였으니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2005년에 있었던 ‘SKY 프로리그 2005’ 결승전은 부산 광안리해수욕장에서 열렸으며, 무려 12만 명의 관중이 몰렸다. 이는 우리나라 4대 인기 스포츠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우스갯소리로 4대 스포츠인 축구야구배구농구 관중 다 합쳐도 스타리그 결승에 운집한 관중 수보다 적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있었다).
게임을 좋아하던 일반 유저 입장에서는 프로게이머들의 경기를 생방송으로 지켜봤고, 그들의 플레이를 따라 연습하기도 했다. 프로게이머들의 경기가 담긴 리플레이 영상을 통해 분석하고 연습하는 사람도 많았다. 우리나라가 어떤 민족인가. 내기를 좋아하니 친구와 게임 대결에서 질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프로게이머들의 게임 영상을 통해 연습하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다고, 10년 넘게 지속되던 스타크래프트가 스타급 선수들의 은퇴, 리플레이 영상 보급이 빨라지면서 프로게이머들의 플레이 패턴이 비슷해지자 재미가 예전만 못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스타크래프트에 다양한 전략이 나온다고는 하지만, 10년이 넘었으니 더 이상 새로운 전략도 없고, 팬들도 조금씩 떠나기 시작했다. 스타크래프트 외에 대중화된 게임이 나오지 않아 e-스포츠는 점차 인기 하락과 위상이 낮아지는 듯했다.
그때 등장한 것이 바로 ‘리그오브레전드’, 즉 롤(LoL, League of Legends)이다. 지난 카타르월드컵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표현을 써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유래가 바로 롤이다. ‘리그오브레전드 2022 월드챔피언십’에 참가한 프로게임단 DRX 소속 프로게이머 김혁규(Deft) 선수의 인터뷰를 담은 영상 제목에서 나온 유행어로, 줄여서 ‘중꺾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롤의 인기도 대단하다. 스타크래프트에 임요환이 있었다면, 롤에는 이상혁(Faker, 이하 페이커) 선수가 있다. 놀라지 마시라. 페이커는 중국 프로게임단의 연봉 2,000만 달러(약 243억 원)의 오퍼를 뿌리치고 연봉 70억 원에 T1과 재계약을 맺은 세계적인 스타다. 어쩌면 그의 인지도는 손흥민 선수보다 높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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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HAN DAEH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