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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큰증권, 상상했던 모든 것이 금융상품이 된다
XITY No.2
2023.08.28
BTS와 손흥민, 류현진에게도 투자?
《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라는 책을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다. 오늘날 아마존을 가장 잘 설명하는 제목이자 문장일 것 같다. 비슷한 느낌으로 요즘 증권가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STO(Security Token Offering)로 잘 알려진 증권형 토큰 혹은 토큰증권이다. 금융위원회에서 허용해주면서 증권가는 분주해졌다. 토큰증권이 현실화되면 세상의 모든 자산을 상품으로 판매할 수 있다. “골드만삭스,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라는 광고 문구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거센 도전에 직면한 금융기관
인류사회가 수천 년간 이어져오면서 사람들은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돈을 모으기 시작하면서 인류사회를 지배하던 샤머니즘은 점차 약해졌다. 돈을 모으는 일이 중요해졌고, 돈의 축적이 곧 힘이었다. 점차 교회 중심의 권력이 돈을 관리하는 은행으로 넘어갔다. 표면적으로 가장 힘이 강해 보이는 것은 정치권력이지만, 그 이면에서 그들을 조정하는 은행의 영향력은 더욱 커져갔다. 지급준비율은 은행에 날개를 달아줬고, 은행은 가진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대출하기 시작하면서 금융제국으로 성장했다. 때로는 탐욕스러워 보인다고 지탄받기도 했지만 미국의 금융제국은 철옹성 같았다. J.P. 모건(J.P. Morgan), 골드만삭스(Goldman Sachs) 등으로 대표되는 월스트리트 금융업은 미국의 상징인 동시에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선망의 직업군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제국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주택 모기지 상품에서 촉발된 시스템 리스크가 미국 금융업 전반으로 퍼졌고, 워낙 막강한 영향력으로 인해 전 세계로 확산됐다. 베어스턴스(Bear Stearns),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 등은 파산했다. 많은 나라가 미국에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고통받았고, 미국의 탐욕스러운 금융계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비트코인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중개기관과 금융기관의 영향을 최소화해보자는 취지다. 비트코인을 필두로 여러 가상자산이 탄생했지만, 그 과정에서 금융기관은 배제됐다. 새로 나온 자산이다 보니 규제가 심하고, 투자자 보호가 중요한 금융업의 특성상 어떻게 관리하고 취급할 것인가 하는 법과 제도가 미비했다. 그 사이 탈중앙금융을 표방한 디파이(DeFi, Decentralized Finance), 용도가 확장되는 NFT(Non-Fungible Token) 등이 나왔지만 금융기관은 여전히 배제된 상황. 이따금씩 비트코인 ETF(Exchange Traded Fund)를 비롯한 금융상품화에 대한 논의도 있었지만 아직 그 결실은 없다.
가상자산: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
가수 임재범의 대표곡 ‘너를 위해’에 다음과 같은 가사가 나온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 아마도 가상자산을 지켜보는 테크기업과 신규 핀테크 기업(내 거친 생각과), 정부(불안한 눈빛), 그리고 금융기관(그걸 지켜보는 너)에 적합한 가사가 아닐까 싶다. 비트코인을 필두로 가상자산 시장이 커지면서 테크기업과 신규 핀테크 기업은 무섭게 성장했다. 반면 새로운 자산이다 보니 정부와 금융당국에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더욱이 관련 법제화가 되어 있지 않아 금융기관은 사업을 영위할 수 없었다. 그 사이 많은 투자자들은 가상자산 시장까지 투자 포트폴리오를 넓히기 시작했다. 거래금액이 워낙 크다 보니 국내외 금융사들도 당연히 거래소 역할을 검토했지만, 관련 법령이나 제도가 미비한 데다 추적이 불가능한 자금에 대해서는 금융당국의 경고도 있었기에 섣불리 시장에 진출할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
2008년 이후 가상자산 시장은 매년 빠르게 성장하며 새로운 금융 영역으로 자리매김했고, 이 흐름을 타고 가상자산거래소와 테크기업들도 함께 성장 가도를 달렸다. 금융기업 입장에서는 시장도 커지고 거래도 많아지는데 참여할 수가 없으니 배가 아플 수밖에 없을 터. 그런 가운데 금융기업이 오래전부터 눈여겨본 것이 있었다. 바로 증권형 토큰, 이른바 STO(Security Token Offering)다. 증권형 토큰이란 부동산, 미술품 등 실물 자산을 블록체인을 활용해 토큰 형태로 발행하는 상품이다. 기존에 유동화하기 어려웠던 무형 자산을 상품화해서 판매할 수 있다면, 좋은 자산을 딜 소싱(Deal Sourcing) 해오면 금융기업 입장에서는 새로운 수익 창출을 기대할 수 있다. 늘 주장하던 금융 플랫폼이 될 수 있는 기회다. 경제적 가치가 있지만 자본법상 증권이 될 수 없는 것들이 토큰증권을 통해 증권이 되고 유동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MZ세대가 소비 주력으로 성장하고, 국내 소비자들의 투자 여력이 생기면서 미술품, 골프장 회원권, 와인, 스니커즈, 시계 등 그동안 투자 대상으로 보지 않았던 제품, 서비스에 대한 투자 시장이 커졌다. 하지만 커지는 수요에 비해 이를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이 없었다. 설령 있었다고 해도 투자자 입장에서 선뜻 신뢰가 가지 않았다. 증권형 토큰이 허용된다면 금융기관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마침내 그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금융규제혁신회의에서 증권형 토큰 발행을 허용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증권형 토큰 발행 및 유통 체계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가상자산은 아니지만, 금융기관도 이제 증권형 토큰을 통해 디지털 자산 시장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게 됐다. 금융위원회는 이를 ‘토큰증권(Security Token)’으로 정의했다.
“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자본금만을 대출해 가상의 화폐를 유통시키며 금융은 차츰 모든 것을 소유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은행의 천재성이자 진정한 비밀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보게 된다.
”
-알랭 소랄, 《그들이 세상을 지배해왔다》 중-
투자 대상 무궁무진! 부동산과
미술, 와인과 스타들까지
토큰증권의 유래는 죽은 자산(Dead Capital)으로부터 시작한다. 페루의 경제학자인 에르난도 데 소토 폴라(Hernando de Soto Polar)에 따르면, 전 세계의 죽은 자산은 9조 3,000억 달러(약 11경 원)에 달한다. 이 자산을 유동화해 살아 있는 자산으로 바꾼다면 수익성 증대 및 다각화를 꾀할 수 있다. 토큰증권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해 부동산, 천연자원, 미디어 콘텐츠 등의 자산을 토큰으로 유동화하고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에 따라 투자자에게 그 수익을 토큰 또는 회사 지분권 등의 형태로 배분하는 토큰을 의미한다. 스위스 금융시장감독청(FINMA)에서 에셋 토큰(Asset Token)이라는 용어로 개념을 설명했지만, 증권의 성격을 갖게 되어 증권형 토큰(STO)으로 많이 불린다. 증권형 토큰은 이제 최초의 법제화를 눈앞에 둔 우리나라에서는 토큰증권으로 규정했는데, 여타 디지털 자산과 달리 자본시장법 적용을 받아야 한다. 즉 기존의 디지털 자산과 달리 규제를 준수하면서 거래해야 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토큰증권은 디지털 자산 형태로 발행되기 때문에 투자 대상이 무궁무진하다. 현재 주목받는 부동산과 미술품뿐 아니라 회원권, 와인, 연예인운동선수 등 유동화가 어려웠던 여러 무형자산을 자산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지금은 방탄소년단에 투자하고 싶어도 투자할 방법이 없다. 하이브(HYBE) 주식을 사는 것으로 이를 대체할 뿐이었다. 하지만 만약 방탄소년단을 토큰증권 형태로 발행해서 판매할 수 있다면, 이는 새로운 금융상품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예전에 미국프로농구(NBA) 선수 스펜서 딘위디가 꿈꾼, 그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증권형 토큰 발행도 가능해졌다. 지난 2019년 브루클린 네츠의 포인트가드 스펜서 딘위디는 자신과 브루클린 네츠 간의 계약을 기초자산으로 토큰 판매를 기획했다. 당시 그의 3년 연봉은 3,300만 달러(약 440억 원)였는데 STO 방식으로 판매한다는 것이었다. 모두 판매되면 딘위디는 3년 치 연봉을 한꺼번에 받을 수 있고, 이를 새로운 수입원 개발에 활용해 향후 투자자들에게 원금과 이자를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대한민국의 자랑인 세계적 스타 방탄소년단, EPL 득점왕 출신 손흥민, 메이저리거 류현진에게도 투자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우리가 상상했던 모든 것이 금융상품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가야 할 길도 멀다. 냉정하게 말해 현재 금융사들은 관련 기술이 없다. 블록체인 트랜잭션을 대용량으로 처리하는 데 있어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반면 블록체인 기업들은 금융업 경험이 없어서 상품 구조화 등에 어려움이 있다. 즉 당장은 기업 간 전략적 제휴를 통해 이를 풀어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최근 금융기업과 블록체인 기술회사 간의 제휴가 늘고 있다. 분명 금융사 입장에서는 긍정적이다. 구호로만 외치던 디지털 금융과 디지털 금융 플랫폼이 현실화되는 시점이다. 먼저 시스템을 구축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 어떤 무형 자산을 디지털 자산을 통해 상품화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 그동안 디지털 자산 부문에서 소외됐던 금융사들이 그 한(恨)을 토큰증권으로 풀어낼 수 있을지 증명해야 할 때다.
연예인운동선수 등 유동화가 어려웠던 여러 무형자산을 비롯 미술품, 골프장 회원권, 와인, 스니커즈, 시계 등 그동안 투자 대상으로 인식받지 못하던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투자 시장이 커지고 있다. |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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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HAN DAEH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