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우리가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그게 모여서 좋은 결과가 나오듯, 야구에서도 스트라이크와 볼이 하나하나 모이면서 저마다의 결과로 이어진다. AI가 침투하면서 우리 일상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듯, 인생의 축소판인 야구에도 AI 심판이 도입된다. AI 심판 도입이 야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보면서 미래에 AI가 우리 인류에 미칠 영향을 점검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심판, AI의 심판을 받다
야구에서는 심판을 엄파이어(Umpire)라고 부른다. 다른 종목에서 보통 레프리(Refree)라고 부르는 것과 차이가 있다. 그만큼 야구에서 심판이 차지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4명의 심판이 야구경기에 투입되는데, 하는 일은 다른 스포츠 종목과 비교해도 다양하다. 포수 뒷자리에서 경기를 보는 주심은 경기를 개시하고, 경기 중 스트라이크와 볼을 판정한다. 공 한 구 한 구에 게임의 분위기가 바뀌는 만큼 스크라이크, 볼 판정은 중요하다. 각 루에 위치하는 루심은 1루, 2루, 3루 베이스를 맡아 주자의 세이프와 아웃, 타구의 페어와 파울 여부를 판정한다.
20세기 미국 스포츠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평가받는 전설적인 야구 칼럼니스트 레너드 코페트(Leonard Kopett)는 자서인《야구란 무엇인가》에서 심판을 악당으로 묘사했다. 야구 경기를 위해 심판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심판의 영향력이 너무 커서 자칫 편파판정이라고 나오면 상대팀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때문. 가끔은 선수나 감독이 심판의 판정에 불만을 갖고 항의를 하기도 한다. 실제로 야구팬들의 비난에 시달려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심판도 적지 않다.
더구나 요즘은 스마트폰과 방송 기술의 발전으로 심판 입장에서 그런 피로도가 더욱 심해졌다. 이제는 TV로 야구 중계를 보면 스트라이크존이 표시되서 심판이 자칫 잘못된 판정을 하면 바로 야구팬들의 비난에 시달린다. 도루나 주루플레이에서 세이프와 아웃 여부도 마찬가지. 더구나 몇 년전부터 비디오 판독이 도입되면서 심판 판정에 비디오 판독을 신청해서 결과가 바뀌기도 한다. 'Umpire'라는 칭호로 불리던 심판으로서는 자존심 상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공정한 게임 진행을 위해 오히려 비디오 판독 횟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현재 메이저리그에서는 팀당 2회, WBC에서는 팀당 1회, 한국프로야구 KBO에서는 최대 3회). 그리고 마침내 KBO는 올해부터 AI 심판을 도입한다.
2024시즌 AI 심판을 도입한 KBO
야구에서 스트라이크존은 매우 민감한 문제다. 공 하나 판정에 따라 타격 폼, 혹은 투구 메커니즘이 흐트러질 수 있고, 더 나아가 경기 흐름까지 바꿔놓을 수 있다. 경기가 끝날 때마다 당일의 스트라이크존이 야구 커뮤니티에서 입방아에 오르는 이유다. 특정 심판이 배정되면 경기 전부터 한숨을 쉬는 팬도 있다. 당연히 이를 알고 있는 심판도 스트레스다. 심판도, 팀도, 선수도, 팬도 스트라이크존은 수없는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그 자체. 인간은 실수의 동물이고, 불완전한 인간이 판정하는 스트라이크존에 대한 신뢰도는 100%가 될 수 없기에 이는 늘 관심과 비난의 대상이 된다. 심판이기에 앞서, 사람이 3시간 정도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서 0.4초 이내로 날아오는 공을 판별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똑같은 볼 판정을 내려도 심판의 출신지역 등에 따라 괜히 오해를 받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감정적 판단이 절대 개입될 수 없는 로봇 심판에 대한 갈망이 나올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