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청나라의 초계지
‘최초’의 타이틀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도시를 아세요?
19세기 말 조용한 포구가 격랑에 휩싸였다. 1883년 개항과 함께 외세에 의해 제물포항이 개방되면서다. 1876년 일본은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개항을 강요했다. ‘조일수호조규’에 따라 부산과 원산 그리고 인천이 개항됐다. 한반도를 노리던 일본은 철저하게 준비했다. 정식 개항 1년 전인 1882년 영사관을 지었다. 이후 일본 영사관을 시작으로 청나라, 러시아 영사관이 속속 들어섰다.
이들은 영사관을 중심으로 치외법권 지역인 조계지를 설정했다. 이후 서구 열강도 조계지를 차지하면서 인천은 열강의 각축장이 됐다. 일본 조계지는 약 1만 평으로 청나라의 두 배였다. 지금도 개항장 거리에 가면 일본과 청나라의 조계지가일본과 중국의 문화를 간직한 채 어색한 동거를 하고 있다. 서구 열강의 조계지는 총 14만 평 규모로 외형상으로는 크지만 가장 요지는 일본이 선점했다. 이권의 침탈을 두고 논의하던 자리가 우리나라 최초의 사교클럽이었던 제물포구락부였고, 제물포구락부는 열강의 한반도 침탈을 상징한다.
개항 이후 인천은 빠르게 변모하며 근대도시의 면모를 갖춰나갔다. 근대식 구조물이 등장하고, 최초의 철도 부설, 최초의 우편업무 등 최초 수식어가 늘기 시작했다. 작은 포구는 근대도시, 관문도시로 변했고, 초가집 50여 채, 배 몇 척밖에 없던 작은 항구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다. 수도 서울과 가까운 지리적 강점으로 인해 많은 배가 인천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이병헌과 김태리가 출연한 tvN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에 나왔을 법한 수많은 근대 건축물이 이 지역에 들어섰다. 1900년대 초에는 영사관 3개, 극장 2개, 은행 7개와 목욕탕, 교회, 호텔 등이 세워졌고, 개항장 거리는 금융과 상업 중심지로 성장해갔다. 개항은 작은 포구를 거대한 항구도시, 국제 무역항으로 변신시켰다.